사회복지 행정

서양 사회복지 역사의 기독교 자선사업과 시대적 배경

happyrich01 2025. 3. 28. 16:19

기독교 사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서양사회의 사회복지 역사는 중세의 장원과 길드를 주요로 하는 지역공동체 활동을 기저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사회복지는 구빈법을 바탕으로 하여 공공복지의 시작을 함께 합니다.  

고대의 구제활동

일차적으로 사회복지의 시초는 사유재산제도가 만들어진 고대의 자선적 구제이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대국가에서도 근대 국가주도의 구빈사업과 비슷한 형태가 있었는데 빈곤과 가뭄이 기승을 부릴 때 재정으로 국민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도적이나 빈곤한 사람의 유입을 금지하거나 빈곤한 유민의 구제를 종교적으로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가난한 자가 생겨나면 나라에서 구제활동을 시행하여 기근이나 홍수 등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는 정부가 가난한 이들에게 무료로 옷과 음식을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나라는 고소득층에게 식료품 지원을 무료로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고대시대라 하더라도 생활의 위협은 도처에 있었으며 특히 전쟁과 자연재해의 위험에 노출도가 높았습니다. 자연재해와 관련한 공동체의 상호적인 부조가 필요한 경우에는 혈연관계에 기저를 둔 상호부조가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바탕을 두어 고대 이스라엘의 자선이념은 로마의 정치적 자선이념과 다르게 종교적인 신앙심에 본질을 두어 종교적 인과응보의 마음으로 사람에게 도움을 줄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종교적 자선사상은 계승되어 금욕주의적인 종교적 의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중세 자선사업

신 아래 모두 형제라는 가르침을 바탕에 둔 중세 기독교의 구빈사상은 사람은 모두 평등하여 이방인들까지 도우려 하였다는 부분이 보편주의적이며 평등한 방식으로 많은 이를 구제하려는 방식을 실천했다는 것이 고무적입니다. 이들은 곡물을 수확할 때 도적자와 가난한 자를 위해 일벙 부분을 일부러 수확하지 않고 남겨두었습니다. 이처럼 중세 기독교의 자선부터 빈곤한 자의 배를 채우기 위해 생산자에게 재정적인 지원 의무를 시행하게 하는 공적부조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초기의 기독교인들은 자선이 죄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이념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중세 기독교의 자선기관으로는 수도원, 십자군, 기사단, 공익전당포, 사원숙박소, 구빈원 등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구빈원과 사원숙박소가 대표적인 기관이었습니다. 구빈원은 집단이 있는 시설형태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과부, 고아, 병자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주거하는 시설로 이용되었습니다. 사원숙박소는 수도원이나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길에 위치하여 빈곤자, 노령자, 고아 등 행려자가 머물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교회가 발전하면서 수도원은 순수한 신앙심을 잃어 가는 추세 속에서 세속을 피해 정결, 순종, 청빈등의 규율을 잃지 않는 조직으로서 전체 수입의 10분의 1을 빈민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중세의 자선사업이 확대되어 가면서 여러 계층에 대한 보호도구가 마련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자선사업이 제도화되면서 엄청난 자선사업으로 인해 도적자와 가난한 자들이 운영하게 되었지만 효율적이지 못한 관리와 부패로 인해 구호의 질이 급격히 떨어져 다양한 문제들이 지적되었습니다. 

빈민법 성립의 시대적 배경

전염병, 흉작, 전쟁 및 기근 등 중세시대에 봉건제도가 무너지면서 도움이 필요한 부랑자와 가난한 자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렵은 흑사병과 백년전쟁 등으로 국민의 70프로 이상이 사망하며 노동력이 급격히 부족해지게 됩니다. 그로 인해 유럽사회는 인구수의 격감, 군사력의 쇠퇴, 빈곤의 만연이라는 결과가 나타났고 노동력의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였습니다. 그 결과, 정부의 재정상황이 어려워졌습니다. 당시 영국 국왕은 수장령을 발표하였습니다. 

 

수장령을 발표한 본질적인 이유는 수도원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와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교회 재산은 결국 나라로 넘어가게 되었지만 동시에 교회가 시행하던 자선사업 또한 정부의 몫으로 넘겨졌습니다. 정부는 빈민들의 문제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규율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규칙과 법령을 세웠습니다. 그때 만들어진 것이 구빈법입니다. 노동력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구빈원에 수용해서 도움을 받게 하거나 가족들에게 맡겨졌습니다. 노동빈민은 차별과 멸시를 당했고 가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